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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상례 절차

상례절차
급묘
절차설명

장지에서 장사를 치르는 일련의 일을 처리하는 절차, 급묘급묘(及墓)란 영구가 장지에 도착하였다는 뜻으로, 장지에서 장사(葬事)를 치르는 일련의 일을 지칭한다. 미리 영구가 도착하기 전에 영구를 임시로 안치할 영악(靈幄)을 무덤 앞길 서쪽에 남향하여 설치하는데, 교의와 탁자를 놓는다. 영악 앞 약 10걸음 앞에 남향으로 친척과 빈객이 머무는 상차(喪次, 상중에 상주가 거처하는 처소로 여차(廬次)라고도 함)인 친빈차(親賓次)를 만들고, 영악의 뒤쪽 광중의 서쪽에 여성들이 머무르는 부인차(婦人次)를 장만한다. 영악과 상차는 차일(遮日)을 이용하기도 한다.1) 방상시와 영여 도착

광중의 네 모서리를 찔러 악귀를 물리치는 방상시와 혼백을 모신 영여의 도착방상시(方相氏)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창으로 광중의 네 모서리를 찔러 악귀를 물리친다. 이어 영여가 도착하면 축관이 혼백을 영악의 악좌에 모시고 신주상자를 혼백 뒤에 안치한다. 이후 전(奠)을 차려 놓고 물러나는데 전상에는 술과 과일, 포와 식해(食醢)를 차린다.2) 영구 도착

영구가 도착한 후 하관준비를 위한 절차들영구가 장지에 도착하면 집사자는 먼저 자리를 광중의 남쪽에 깐다. 상여에서 영구를 내려 자리 위에 안치하는데, 머리를 북쪽으로 가게 한다. 먼저 관등(棺凳, 관을 놓을 때 받치는 대)을 받쳐 놓고 그 위에 영구를 놓는데, 새끼줄과 기름종이 등을 벗기고 공포(功布)로 영구를 깨끗이 닦고 나서 이불을 덮는다. 이후 명정을 가지고 와서 장대를 제거하고 영구 위에 놓는다. 주인과 모든 남자들은 광중의 동쪽에 서서 서향하고, 주부와 모든 부녀자들은 광중의 서쪽 장막 안에서 동향하여 곡한다. 모두 북쪽이 상위이다. 빈객들이 영구 앞에 나아가 재배하고 작별하여 돌아간다. 주인이 절을 하면 빈객도 절을 한다.3) 하관

영구를 광중에 내려 매장하는 절차, 하관하관(下棺)이란 말 그대로 영구를 광중에 내린다는 뜻으로, 영구를 매장한다는 의미로 폄(窆)이라고 한다. 흔히 하관을 하는 때는 그날의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따져 땅과 상주와 고인에게 해(害)가 없는 시간으로 정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상주들은 잠시 곡을 그치고 영구 내리는 것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영구를 내릴 때 조금의 요동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원래는 녹로(轆轤, 하관할 때 영구를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르래)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광중의 금정틀에 기둥을 세우고 여기에 긴 장대인 장강(長杠)을 걸치고, 여기에 끈을 매어 영구를 매달고 도르래를 돌려 서서히 내림으로써 영구가 요동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대부분 2개의 동아줄을 사용하여 여러 사람이 그 줄을 잡고 천천히 영구를 내려 흔들리거나 기울어지지 않게 한다.
영구를 내리면서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해 금정틀에 표시한 곳과 영구에 표시한 부분을 맞추어 바르게 한다. 이를 마치면 구의(柩衣, 영구를 덮는 천)와 명정을 잘 펴서 바르게 해야 한다. 이때 삽선(翣扇)은 영구의 좌우에 끼우듯 기대놓는데, 불삽(黻霎)이 위쪽에, 운삽(雲翣)이 아래에 놓이지만 운삽만 쓰는 경우 가운데에 놓는다.

고인에게 비단으로 된 현훈을 드리는 절차, 증현훈정리가 되면 주인이 비단으로 된 현훈(玄纁)을 드린다. 이를 증현훈(贈玄纁)이라고 하는데, 고인에게 올리는 폐백이다. 현훈은 검은색 6장과 붉은 색 4장으로 구성되는데, 한 장은 비단 8자로로 되어 있다. 예서에 의하면 일하는 사람이 현훈을 받들어 주인에게 주면 주인이 이를 받아 축관에게 주고, 축관이 이를 받아 영구의 동쪽에 놓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관과 곽 사이에 놓는다고도 하나, 통상은 고인의 가슴 부위인 영구 가운데에 놓는데, 현을 위쪽의 동쪽에 훈을 아래쪽의 서쪽에 놓는다. 이를 상현하훈(上玄下纁)이라고 한다. 현훈을 드리고 주인이 부복하며 곡을 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곡을 한다. 상현하훈으로 폐백을 드리는 이유는 현(玄)은 양(陽)인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위쪽에 놓고, 훈(纁)은 음(陰)인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래쪽에 놓는다.

회다지로 채운 부분 위에 횡대를 덮는 절차현훈을 드리면 횡대(橫帶)를 덮고 매장을 시작한다. 즉, 사방에 회다지(광중의 둘레를 석회로 벽을 쌓아 풀 나무뿌리나 곤충 등이 광중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영구 둘레에 회로 곽을 만들거나 벽을 치는 매장법)로 채운 부분 위에 뚜껑처럼 덮개를 덮는 것으로 흙이 직접 영구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이를 횡대라고 하는데, 7장을 빈틈없이 덮는다. 일반적으로는 주인을 비롯한 상주들이 먼저 옷자락에 흙을 담아서 영구 위 횡대 위에 3번 뿌리면서 “취토요 취토요 취토요”라고 외치지만, 예서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고유문화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매우 중요한 문화코드로 작용하고 있는 회다지취토를 마치면 삼물(三物, 석회, 모래, 황토)을 고루 섞은 것과 술을 뿌리면서 밟아 채운다. 예서에서는 영구가 흔들릴까 두렵기 때문에 다지기를 하지 않고 삼물을 많이 써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고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선소리에 맞추어 여러 번 회다지를 한다. 이를 달공질, 덜구질, 덜구찧기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이때 부르는 노래를 회다지 노래라고 하는데, 일종의 노동요로서 사람들이 리듬에 맞추어 발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매장을 할 때 이 회다지는 한국의 매우 중요한 문화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회다지 노래를 만가(輓歌)라고도 하는데, 그 역사는 매우 오래다. 만가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수고로움을 덜고 여러 사람의 힘을 가지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점차 흙을 채워 광중을 매우고 봉분을 만든다. 통상 2층, 5층, 7층 등으로 회다지를 하지만 예서에서는 약 1자쯤 채워질 때마다 가볍게 손으로 다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세속에서 진흙과 회를 밟아 채우는 사람들이 착용하는’ 포말(布襪, 회다지 할 때 싣는 베로 만든 버선)이 준비물로 명시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회다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회나 흙벽돌처럼 지석을 만들었을 경우에는 영구 위에 어느 정도 흙을 채운 다음 그 위에 지석을 깔고 흙을 덮는다. 지석을 깔 때 폭이나 길이는 광중의 넓이 안쪽 경계를 넘지 않게 한다.

4) 후토제

광중에 흙을 채워 평평해질 정도가 되었을 때 지내는 제사, 후토제광중에 흙을 채워 평평해질 정도가 되면 후토제를 지낸다. 후토제란 산신제(山神祭)라고도 하는데, 묘의 왼쪽인 동쪽에서 지낸다. 먼 친척이나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주인을 대신하여 지낸다. 산신제의 주인이 분향(焚香)한 후 헌작(獻爵)하면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토지신께 감히 고합니다. 지금 모씨를 위하여 이 무덤에 묻으니 신께서 돌보시어 뒤탈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삼가 맑은 술과 음식을 공손히 신께 드리니 흠향하소서.’라는 내용이다.        維  年號幾年歲次干支幾月干支朔幾日干支某官姓名          敢昭告于      土地之神今爲某官封諡      貶玆幽宅神其保佑俾無後艱謹以淸酌脯醢祗薦于      神尙      鄕고축(告祝)을 마치면 주인이 재배하고 물러난다. 산신제에 사용한 제물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누어 먹는다.5) 하지석

고인의 묘임을 표시하는 지석을 묻는 절차, 하지석하지석(下誌石)이란 고인의 묘임을 표시하는 지석을 묻는 절차를 말한다. 묘가 평지에 있을 때는 광중의 남쪽에 벽돌 한 겹을 깔고 미리 준비한 지석을 그 위에 놓은 후 벽돌로 사방을 둘러싸고 그 위를 덮는다. 만약 묘가 산기슭에 있으면 광중 남쪽으로 2~3자 되는 곳에 4~5자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지석을 묻는다. 만약 회조각, 혹은 흙벽돌 형태로 지석을 만들면 광중에 어느 정도 흙을 채운 다음에 지석을 나란히 깐다. 이때 길이와 폭은 광중의 넓이와 길이를 벗어나지 않게 한다. 지석 위에 다시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드는데, 1자쯤을 한 층으로 하여 공이(절구나 방아확에 든 물건을 찧거나 빻는 기구)로 잘 다진다.

6) 제주

미리 준비한 나무패에 글씨를 써서 신주의 기능을 하도록 하는 절차, 제주제주(題主)란 미리 준비한 나무패에 고인의 이름과 관직 등의 글씨를 써서 신주(神主)의 기능을 하도록 하는 절차이다. 사찰에서 부처를 만들고 점안(點眼)을 하여 나무 조각품을 부처님이 되도록 하는 점안불사(點眼佛事)처럼 고인의 영혼을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집사자가 영좌의 동남쪽에 서향하여 탁자를 마련하고 벼루와 먹을 놓는다. 맞은 편 탁자에 손을 씻는 대야인 관세(盥洗)와 수건을 놓고 주인이 그 앞에 북향하여 선다. 축관이 손을 씻고 신주의 받침에서 몸체를 빼낸 뒤 몸체와 분면을 분리시켜 탁자 위에 눕혀 놓는다. 축관이 글씨를 쓸 사람인 제주자(題主者)에게 손을 씻고 서쪽을 향해 서게 한다. 제주자가 탁자 앞에 앉아서 함중(陷中, 고인의 관직, 호, 본관성명, 자 등을 기록하기 위하여 신주(神主) 몸체에 직사각형으로 우묵하게 깎아 파낸 부분)에 글씨를 쓴다. 이어 신주의 분면(粉面, 봉사자와 선조의 관계를 나타내도록 위(位)를 표시한 신주의 앞쪽 면으로, 봉사자가 바뀌면 대수를 고쳐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분칠을 함)에도 글씨를 쓰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중식 남>  故某官某公諱某字某神主          <함중식 여>  故某封某氏諱某神主          <분면식 남>  顯考某官封諡府君神主                   孝子某奉祀          <분면식 여>  顯妣某封某氏神主            孝子某奉祀

신주에 글씨 쓰기를 마치고 올리는 전, 제주전제주자가 신주에 글씨 쓰기를 마치면 축관이 신주를 받들어 영좌에 모시고 혼백은 상자 안에 넣어 신주 뒤에 놓는다. 이어 신주가 완성되었으므로 고인에게 혼백에서 신주로 전이하도록 고하는 제주전(題主奠)을 올린다. 향을 피우고 헌작한 후에 주인이 꿇어앉으면, 축관이 주인의 오른쪽으로 나와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000이 현고 모부군에게 감히 밝혀 고합니다. 육신은 광중으로 돌아가고 신은 집으로 돌아오시는데, 신주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높으신 신령께서는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따라 이에 의지하고 또 의지하소서.’라는 내용이다.  維  年號幾年歲次干支幾月干支朔幾日干支孤子某          敢昭告于      顯考某官封諡府君形歸窀穸          神返室堂神主旣成伏惟      尊靈舍舊終新是憑是衣어머니의 상에는 ‘애자(哀子)’라고 하고,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으면 ‘고애자(孤哀子)’라고 한다. 만약 승중(承重, 장손(長孫)으로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 조부 이상을 계승하는 손자)을 하였을 때는 ‘고손(孤孫), 애손(哀孫), 고애손(孤哀孫)’으로 쓴다. 아내의 상에는 ‘부(夫)’라 하고 항렬이 낮거나 어린 사람에게는 그 친속 호칭에 따른다. 어머니의 상에는 ‘현고(顯考)’를 ‘현비(顯妣)’로, 아내의 경우에는 ‘망실(亡室)’이라 하고, 항렬이 낮거나 어릴 경우에는 ‘현’을 ‘망(亡)’으로 고친다. 아내에게는 ‘감(敢)’을 빼고 동생 이하에는 ‘고우(告于)’라고만 한다. 아내 이하에게는 ‘부군(府君)’이라는 2글자를 뺀다.통상적으로는 고인의 신주에 혼을 불어 넣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하여 주인이 제주자에게 큰 절로 예를 갖추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제주자 역시 맞절을 하여 답한다.

제주전을 마친 후의 급묘 절차제주전을 마치면 축관은 신주를 영여에 싣고, 그 위에 혼백상자를 둔다. 제주전에서 차렸던 음식은 일하는 사람들이 음복하도록 남겨둔다. 영좌를 거두고 집으로 출발하는데 이때에는 향로에 향을 피우고 향탁이 앞장선다. 상주는 곡을 하면서 영여의 뒤를 따른다. 자식 중 한 사람이 남아 봉분을 완성할 때까지 지켜보게 한다. 묘의 봉분은 높이가 4자이고, 지름은 16~17자이다. 그 앞에 작은 비석을 세우는데, 높이는 4자이다. 부인의 묘비석은 남편의 장례를 기다려서 한다. 묘역에 잔디를 심어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다.집안 형편에 따라 석인(石人)이나 상석(床石) 등의 석물(石物)을 마련하는데 이러한 석물은 나중에 마련해도 무방하다. 통상 설치되는 석물은 묘의 표지인 작은 비석, 비석의 받침, 섬돌인 계체석(階砌石), 조상의 혼이 노니는 곳을 의미하는 혼유석(魂遊石), 향로를 놓는 향안석(香案石), 제물과 잔을 올리는 상석, 문인(사서인의 경우 무인석을 사용할 수 없음)으로 만든 석인(石人), 무덤의 경계표인 망주석(望柱石) 등으로 집안의 형편에 따라 달리한다.

예서기록

주자가례

1. 상여가 이르기 전에 집사자는 먼저 영악(靈幄)과【未至, 執事者先設靈幄】 묘도(墓道)의 서쪽에 있는데 남쪽을 향하고 의자와 탁자를 둔다.【在墓道西, 南向, 有倚卓.】 2. 친척과 빈객의 막차(幕次)와【親賓次】 영악(靈幄)의 열 걸음 정도 앞쪽에 있는데,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에 두며, 막차의 북쪽으로 영악과 마주보게 하되 모두 남쪽을 향한다.【在靈幄前十數歩, 男東女西, 次北與靈幄相直, 皆南向.】 3. 부인의 악차(幄次)를 설치한다.【婦人幄】 영악의 뒤쪽, 광의 서쪽에 있다.【在靈幄後壙西.】 4. 방상이 이른다.【方相至】 창으로 광의 네 모퉁이를 친다.【以戈系壙四隅.】 5. 명기 등이 이른다.【明器等至】 광의 동남쪽에 진설하는데 북쪽을 윗자리로 한다.【陳於壙東南, 北上.】 6. 영거(靈車)가 이른다.【靈車至】 축이 혼백을 받들고 영악의 자리에 나아가 두고, 신주 상자 또한 혼백의 뒤에 둔다.【祝奉魂帛, 就幄座, 主箱亦置帛後.】 7. 이어서 전을 차리고 물러난다.【遂設奠而退】 술과 과일, 포와 해이다.【酒·果·脯·醢.】 8. 널이 이른다.【柩至】 집사자는 먼저 광의 남쪽에 자리를 깔고, 널이 이르면 상여에서 내려 자리 위에 두는데, 머리가 북쪽으로 가게 한다. 집사자는 명정을 취하여 깃대를 제거한 뒤 널 위에 놓는다.【執事者先布席於壙南, 柩至, 脫載, 置席上, 北首. 執事者取銘旌, 去杠, 置柩上.】 9. 주인 남녀가 각각 자리로 나아가 곡을 한다.【主人男女各就位哭】 주인과 여러 남자들은 광의 동쪽에 서쪽을 향해 선다. 주부와 여러 부녀들은 광의 서쪽 악차 안에 서는데 동쪽을 향한다. 모두 북쪽을 윗자리로 한다. 길에 있을 때의 의식과 같다.【主人·諸丈夫立於壙東西向. 主婦·諸婦女立於壙西幄內, 東向. 皆北上. 如在塗之儀.】 10. 빈객이 절하고 하직한 뒤 돌아간다.【賓客拜辭而歸】 주인이 절을 하면 빈객이 답배를 한다.【主人拜之, 賓答拜.】 11. 이에 하관한다.【乃窆】 먼저 나무 깃대를 회격(灰隔)의 위에 가로로 걸치고, 밧줄 4가닥으로 널 바닥의 쇠고리에 건 뒤 매지 않고 내려서 깃대 위에 이르면 밧줄은 빼버린다. 별도로 가는 베나 생견을 접어 관 아래쪽까지 덮어 씌워 내려오되 다시 빼내지 않고 그 남는 것만을 잘라서 버린다. 널에 쇠고리가 없으면 즉시 밧줄로 널 바닥을 에워싸 양쪽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깃대 위에 이르면 밧줄을 제거하는데, 베를 사용하는 것은 이전과 같다. 널을 내리는 것은 가장 정밀하게 살피고 힘을 써야 하니, 잘못하여 기울어 떨어지거나 요동치게 해서는 안 된다. 주인과 형제는 곡을 멈추고 몸소 다가가 살펴야 한다. 내리고 나서는 다시 구의와 명정을 정돈하여 평평하고 바르게 만든다.【先用木杠橫於灰隔之上, 乃用索四條穿柩底, 環不結而下之, 置杠上, 則抽索去之. 別摺細布若生絹兠柩底而下之, 更不抽出, 但裁其餘棄之. 若柩無環, 即用索兠柩底兩頭放下, 至杠上乃去索, 用布如前. 大凡下柩, 最須詳審用力, 不可誤有傾墜動搖. 主人兄弟宜輟哭, 親臨視之. 已下, 再整柩衣·銘旌令平正.】 12. 주인이 현훈(玄纁)을 드린다.【主人贈】 검은 비단[玄]은 8단, 붉은 비단[纁] 4단으로 각각의 길이는 1길 8자이다. 주인이 받들어 널의 곁에 놓고 재배하고 이마를 조아리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슬픔을 다해 곡을 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숫자를 다 채울 수 없을 때는 현과 훈을 1단씩만 사용해도 괜찮다. 그 나머지 금, 옥, 보물, 노리개는 모두 광에 넣어서는 안 되는데, 망자에게 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玄六纁四, 各長丈八尺, 主人奉置柩旁, 再拜稽顙, 在位者皆哭盡哀. 家貧或不能具此數, 則玄纁各一可也. 其餘金·玉·寳·玩並不得入壙, 以爲亡者之累.】 13. 회격의 안팎 덮개를 덮는다.【加灰隔內外蓋】 먼저 회격의 크기를 헤아려 얇은 판 1조각을 만들어 곁으로 네 벽에 닿아 빈틈없이 붙도록 하였다가, 이때 널 위에 얹고 다시 유회(油灰)로 막은 뒤, 그 위에 골고루 조금씩 역청을 녹여 부어 신속히 응고하게 만들면 곧 판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대략 두께가 3치쯤 되게 되면 곧 바깥쪽 덮개를 얹는다.【先度灰隔大小, 制薄板一片, 旁距四墻, 取令脗合. 至是加於柩上, 更以油灰彌之, 然後旋旋少灌瀝清於其上, 令其速凝, 即不透. 板約以厚三寸許, 乃加外葢.】 14. 석회로 채운다.【實以灰】 삼물(三物)을 고르게 섞은 것을 아래에 깔고 숯가루를 위에 까는데, 각각 바닥 및 사방의 두께보다 배가 되게 하고, 술을 뿌리고 살살 밟아 굳게 채운다. 널 안을 흔들리게 할까 염려되므로 다지지는 못하고, 많이 사용하여 채워지기를 기다릴 뿐이다.【三物拌勻者居下, 炭末居上, 各倍於底及四旁之厚, 以酒灑而躡實之. 恐震柩中, 故未敢築, 但多用之, 以俟其實爾.】 15. 이에 흙을 채워 조금씩 다진다.【乃實土而漸築之】 흙을 1자정도 넣을 때마다 가볍게 손으로 다져서 널 안이 흔들리지 않게 한다.【下土, 毎尺許即輕手築之, 勿令震動柩中.】 16. 묘소 왼쪽에서 후토에게 제사를 지낸다.【祠后土於墓左】 앞에서의 의식과 같다. 축판은 앞의 경우와 같지만 ‘이제 모관봉시(某官封諡)를 위하여 이 유택에 하관합니다.’라고 한다. ‘신령께서는’라고 한 이후는 동일하다.【如前儀, 祝板前同, 但云, ‘今爲某官封諡窆茲幽宅.’ ‘神其’後同.】 17. 명기 등을 매장한다.【藏明器等】 흙을 반 정도 채우면 명기(明器), 하장(下帳), 포(苞), 소(莦), 앵(甖)을 편방에 매장하고 널판으로 그 문을 막는다.【實土及半, 乃藏明器·下帳·苞·筲·甖於便房, 以版塞其門.】 18. 지석을 내린다.【下志石】 묘가 평지에 있으면 광 안 남쪽 가까운 곳에 먼저 벽돌 한 겹을 깔고 그 위에 지석을 놓은 뒤 다시 벽돌로 사방을 에워싸고 그 위를 덮는다. 묘가 산비탈 험준한 곳에 있으면 광에서 남쪽으로 몇 자 사이에 깊이 4∼5자가 되도록 땅을 파고 이러한 방법에 따라 묻는다.【墓在平地, 則於壙內近南先布磚一重, 置石其上, 又以磚四圍之, 而覆其上. 若墓在山側峻處, 則於壙南數尺間掘地, 深四五尺, 依此法埋之.】 19. 다시 흙을 채워 견고하게 다진다.【復實以土而堅築之】 흙을 내리는 것 또한 1자 정도를 기준을 한다. 다만 촘촘히 달구질을 하여 견고하게 다진다.【下土亦以尺許爲凖, 但湏密杵堅築.】 20. 신주를 쓴다.【題主】 집사자는 영좌의 동남쪽에 탁자를 설치하는데 서쪽을 향하도록 한다. 그 위에 벼루, 붓, 먹을 놓고 탁자와 마주한 곳에 세숫대야와 수건을 앞에서와 같이 놓는다. 주인이 그 앞에 서는데 북쪽을 향한다. 축이 손을 씻고 신주를 꺼내서 탁자 위에 눕혀 놓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에게 손을 씻고 서쪽을 향해 서서 먼저 가운데 파진 곳에 쓰게 한다. 아버지의 경우에는 ‘고(故) 모관(某官) 모공(某公) 휘모(諱某) 자모(字某) 몇째[第幾] 신주(神主)’라고 하고, 분을 칠한 곳에는 ‘황고(皇考) 모관(某官) 봉(封) 시(諡) 부군(府君) 신주(神主)’라고 쓰며, 그 아래 왼쪽 옆에는 ‘효자모봉사(孝子某奉祀)’라고 쓴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고(故) 모봉(某封) 모씨(某氏) 휘모(諱某) 자모(字某) 몇째[第幾] 신주(神主)’라고 하고, 분을 칠한 곳에는 ‘황비(皇妣) 모봉(某封) 모씨(某氏) 신주(神主)’라고 하며, 곁에는 또한 아버지의 경우와 같이 한다. 관직이나 봉호가 없으면 생전에 부르던 호칭을 적는다. 쓰기를 마치면 축이 영좌에 놓고 혼백을 상자에 담아서 그 뒤에 놓는다.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며 축판을 들고 주인의 오른쪽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읽는다. ‘고자(孤子) 아무개가 감히 고 모관 봉시 부군(皇考某官封諡府君)께 아룁니다. 형체는 땅속으로 가셨지만 신령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신주가 완성되었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신령께서는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따라 여기에 기대고 여기에 의지하십시오.’라고 한다. 마치면 그것을 품고 일어나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이 재배를 하고 슬픔을 다해 곡을 한 뒤 그친다. 어머니 상에는 ‘애자(哀子)’라고 칭하는데 이후에도 이를 따른다. 봉호나 시호가 있는 경우에는 모두 칭하는데 이후에도 모두 이를 따른다.【執事者設卓子於靈座東南, 西向. 置硯筆墨, 對卓置盥盆帨巾如前. 主人立於其前, 北向. 祝盥手, 出主, 臥置卓上, 使善書者盥手, 西向立, 先題陷中. 父則曰“故某官某公諱某字某第幾神主”, 粉面曰“皇考某官封諡府君神主”, 其下左旁曰“孝子某奉祀”. 母則曰“故某封某氏諱某字某第幾神主”, 粉靣曰“皇妣某封某氏神主”, 旁亦如之. 無官封, 則以生時所稱爲號. 題畢, 祝奉置靈座, 而藏魂帛於箱中, 以置其後. 炷香, 斟酒, 執板, 出於主人之右, 跪讀之曰, “孤子某敢昭告於皇考某官封諡府君, 形歸窆穸, 神返室堂, 神主既成, 伏惟尊靈, 舎舊從新, 是憑是依”, 畢, 懐之, 興, 複位. 主人再拜, 哭盡哀, 止. 母喪稱“哀子”, 後放此, 凡有封諡, 皆稱之, 後皆放此.】 21. 축이 신주를 받들고 수레에 올린다.【祝奉神主升車】 혼백상자는 그 뒤에 있다.【魂帛箱在其後.】 22. 집사자가 영좌를 철거한 뒤 이어서 출발한다.【執事者徹靈座, 遂行】 주인 이하는 올 때처럼 곡을 하며 따른다. 묘문에 이르면 존장은 수레나 말을 타고, 묘로부터 백보 정도가 되면 항렬이 낮거나 어린 사람도 수레나 말을 탄다. 다만 자제 가운데 한 사람을 남겨 흙을 채우는 것부터 봉분을 조성하는 것까지를 감독하게 한다.【主人以下哭從如來儀. 至墓門, 尊長乘車馬. 去墓百歩許, 卑幼亦乘車馬. 但留子弟一人監視實土, 以至成墳.】 23. 봉분의 높이는 4자로 그 앞에 작은 돌 비석을 세우는데 또한 높이가 4자이고 받침대의 높이는 1자 정도이다.【墳高四尺, 立小石碑於其前, 亦高四尺, 趺高尺許】


상례비요

[토지신에게 제사할 때의 준비물【祠土地之具】] 모두 앞에서와 같다.【幷同前.】 [제주(題主)의 준비물【題主之具】] 글씨 잘 쓰는 사람【善書者】 벼루【硯】 붓【筆】 먹【墨】 축문【祝文】 세숫대야【盥盆】 수건[帨巾]【帨巾】 탁자 : 2. 하나는 붓과 먹을 올려놓고, 하나는 세숫대야와 수건을 올려놓는다.【卓: 二. 一置筆·墨, 一置盥盆·帨巾.】 [성분(成墳)의 준비물【成墳之具】] 사토(莎土)【莎土】 작은 빗돌 : 높이 4자, 너비 1자 이상, 두께는 너비의 3분의 2이다. 머리를 동그스름하게 하고 앞면에 글씨를 새기는데, 지석의 덮개와 같다. 세계(世系)와 성명 그리고 행적을 간략히 서술하여 왼쪽에 새기는데, 뒷면의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가며 새긴다. ○ 부인의 경우는 남편의 장사를 기다렸다가 세우는데, 앞면은 남편이 죽었을 때 지석 덮개에 새긴 것과 같다.【小石碑: 高四尺, 闊尺以上, 其厚居三分之二. 圭首而刻其面, 如誌之蓋. 畧述其世系名字行實, 而刻於其左, 轉及後右而周焉. ○ 婦人俟夫葬, 乃立, 面如夫亡誌蓋之刻.】 계체석(階砌石)【階砌石】 석상(石牀) : 합장을 한 경우에는 두 벌을 갖추는데, 한 벌을 쓰기도 한다. 너비는 적절하게 한다.【石牀: 合葬則具二, 或用一. 廣狹隨宜.】 석인(石人) : 2개【石人: 二.】 망주석(望柱石) : 2개. 크기는 적절하게 한다.【望柱石: 二. 大小隨宜.】 1. 『가례』 1과 동일 2. 『가례』 2와 동일 3. 『가례』 3과 동일 4. 『가례』 4와 동일 5. 『가례』 5과 동일 6. 『가례』 6과 동일 7. 『가례』 7과 동일 8. 『가례』 8과 동일 9. 『가례』 9와 동일 10. 『가례』 10과 동일 11. 『가례』 11과 동일 12. 『가례』 12와 동일 13. 『가례』 13과 동일 14. 『가례』 14와 동일 15. 『가례』 15와 동일 16. [『가례』 16을 변형] 묘소 왼쪽에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祠土地於墓左】’ 17. 『가례』 17과 동일 18. 『가례』 18과 동일 19. 『가례』 19와 동일 20. 『가례』 20과 동일 21. 『가례』 21과 동일 22. 『가례』 22와 동일 23. 『가례』 23과 동일


사의

[영악을 설치할 때의 준비물【靈幄之具】] 제각(祭閣) 포막(布幕)․포악(布幄)【布幕․布幄】 인석: 속칭 깔개[鋪陳]이다.【茵席: 俗云鋪陳.】 초석(草席)【草席】 병풍【屛】 교의【椅】 탁자【卓】 향안(香案)【香案】 향합(香盒)【香盒】 향로【香爐】 촛대: 초를 꽂는 기구이다.【燭檠: 燭具.】 자면지(藉面紙): 탁자에 편다.【藉面紙: 鋪於卓面.】 전구(奠具): 술, 과일, 포, 육장【奠具: 酒․果․脯․醢】 [하관할 때의 준비물【窆葬之具】] 횡강 2개: 광 위에 설치한다.【橫杠二: 施於壙上.】 단강 2개: 회격 위에 설치한다.【短杠二: 施於灰隔上.】 하관포: 20자를 2가닥으로 나누어 만든다. 혹은 가는 새끼줄 50 내지 60가닥을 겹쳐 사용한다.【下棺布: 二十尺分爲二條. 或以細繩五六十條, 重疊用之.】 가는 줄: 금정기에 끌어 붙이는 것이다.【細繩: 引着金井者.】 흰 실: 밀랍으로 관의 상 하단에 붙여 좌향을 점검하는 것이다.【素絲: 以蠟粘棺上下端, 以驗坐向.】 큰 새끼(大索): 관을 들어 강 위에 놓는다.【大索: 擧棺置杠上.】 현훈(玄纁): 검은 비단[玄] 6단과 붉은 비단[纁] 4단을 쓰는데, 각기 길이가 18자이다. 집이 가난하면 현과 훈을 각각 1단씩만 쓴다.【玄纁: 玄六纁四, 各長丈八尺. 家貧玄纁各一.】 녹로(轆轤): 도르래를 사용하여 하관하면 또한 매우 편안하다. 그러나 재력이 없으면 준비하기 어렵고 또한 축을 돌릴 때 사람의 힘을 사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베를 사용하여 하관하면 매우 편리하다.【轆轤: 用轆轤下棺, 亦甚安穩. 然非有財, 則難備且於轉??之際, 其用人力則一也. 以布下棺, 極便好矣.】 자판(藉板): 광(壙) 밑에 넣는 것으로서 관의 깔개이다. 두께는 5푼이다.【藉板: 納壙底爲柩藉也. 厚五分.】 측후기(測候器): 시각을 재기 위한 것이다.【測候器: 以測時刻者.】 1. 묘소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영악(靈幄)을 설치한다.(『가례』 1)【未至墓, 先設靈幄(『家禮』)】 2. 방상씨가 이르러 창으로 광(壙)의 네 모퉁이를 친다.(『가례』 4)【方相至, 以戈擊壙四隅(『家禮』)】 3. 영거가 이르면 축이 혼백을 받들고 영악의 자리에 나아가 두고, 신주 상자 또한 혼백의 뒤에 둔다.(『가례』 6)【靈車至, 祝奉魂帛, 就幄座, 主箱亦置帛後(『家禮』)】 4. 전(奠)을 차린다.(『가례』 7)【設奠(『家禮』)】 5. 널이 이른다.(『가례』 8)【柩至(『家禮』)】 6. 주인 남녀가 각각 자리로 나아가 곡을 한다.(『가례』 9)【主人男女各就位哭(『家禮』)】 7. 이에 하관한다.(『가례』 11)【乃窆(『家禮』)】 8. 주인이 현훈을 드린다.(『가례』 12)【主人贈(『家禮』)】 8. 회격의 안팎 덮개를 덮는다.(『가례』 13)【加灰隔內外盖(『家禮』)】 9. 석회로 채운다.(『가례』 14)【實以石灰(『家禮』)】 10. 이에 흙을 채워 조금씩 다진다.(『가례』 15)【乃實土而漸築之(『家禮』)】 11. 묘소의 왼쪽에서 후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앞에서의 의식과 같다.(『가례』 16)【祠后土於墓左, 如前儀(『家禮』)】 12. 지석을 내린다.(『가례』 18)【下誌石(『家禮』)】 13. 다시 흙을 채워 견고하게 다진다.(『가례』 19)【復實土而堅築之(『家禮』)】 14. 신주를 쓴다.(『가례』 20의 주)【題主(『家禮』】 14. 혼백을 광(壙)에 묻는다.【魂帛埋于壙】 15. 축이 신주를 받들고 수레에 오른다.(『가례』 21)【祝奉神主升車(『家禮』)】 16. 집사자는 영좌를 철거한 뒤 이어서 출발한다.(『가례』 22)【執事者徹靈座, 遂行(『家禮』)】 17. 자제 가운데 한 사람을 남겨 흙을 채우는 것부터 봉분을 조성하는 것까지를 감독하게 한다.(『가례』 22의 주)【留子弟一人監視實土, 以至成墳.(『家禮』】 18. 봉분의 높이는 4자로 그 앞에 작은 돌비석을 세우는데, 또한 높이가 4자이고, 받침대의 높이는 1자 정도이다.(『가례』 23)【墳高四尺, 立小石碑於其前, 亦高四尺, 趺高尺許(『家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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