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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제례란

제례종류
사시제
사례편람에 그려진 정침시제지도
사례편람에 그려진 정침시제지도

계절의 흐름을 기억하여 지내는 제사의 으뜸, 사시제사시제(四時祭)는 시제(時祭)라고도 하는데, 유교식 제례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사이다. 제사를 지내는 시기는 사계절의 가운데에 있는 중월(仲月)에 지낸다. 제사의 대상은 사당에 모신 4대의 조상이다. 만약 불천지위(不遷之位)를 모시고 있을 경우 불천지위 역시 사시제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조를 모시지 않기 때문에 시조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제사는 『주자가례(朱子家禮)』나 도암 이재(陶庵 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우리나라 예서(禮書)에 모두 등장하는 제사이다.사시제를 지내는 뜻은 계절이 옮겨가고 절기가 바뀌면 감격하여 어버이를 생각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올려 효경의 마음을 펴는 제사이다. 따라서 사시제란 계절의 흐름을 기억하여 지내는 제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는 효의 실천인 것이다.

1년에 4번 지내는 제사, 사시제사시제를 지내는 시기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4계절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이미 조선시대에도 논란이 있었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와 학봉 김성일(鶴峯 金成一)은 춘분ㆍ하지ㆍ추분ㆍ동지에 지낸다고 하였다. 한편 도암 이재(陶菴 李縡)는 초봄ㆍ초여름ㆍ초가을ㆍ초겨울에 날을 잡아서 지낸다고 하여 차이를 보인다. 날을 잡는 시기는 보통 열흘 전이고, 각 계절의 가운데 달 중에서 정일(丁日) 혹은 해일(亥日)로 가린다. 세부적인 시기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1년에 4번 지내는 원칙에는 차이가 없다.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질명(質明)이라고 하여 동이 트면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율곡은 궐명(厥明)이라고 하여 어두운 새벽에 지낸다고 하여 차이가 있다.

정침 혹은 청사에서 지내는 제사, 사시제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정침(正寢) 혹은 청사(廳事)이다. 청사가 별도로 있을 경우 청사에서 지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침의 대청에서 지낸다. 사시제는 한꺼번에 모든 신주를 정침에 내모시고 합동으로 지내는 것이 다른 제사와는 차이가 있다. 신위를 모시는 방법은 제일 서쪽에서부터 고조(高祖)ㆍ증조(曾祖)ㆍ조(祖)ㆍ고(考)의 신위를 모시는데, 모두 고위(考位)와 비위(妣位)를 합설하여 모신다. 이 때 고위는 서쪽, 비위는 동쪽에 모신다.

절차상 표준적 모습을 보이는 제사, 사시제제사를 지내는 절차는 사시제가 제사의 으뜸이기 때문에 표준적 모습을 보인다. 제사는 주인 등이 모두 3일 전에 재계(齋戒)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루 전에 정침에 신위를 모실 자리를 마련한다. 주인은 희생을 살피고, 주부(主婦)는 제기를 씻는다. 그리고 제사음식을 갖춘다. 동이 트면 사당으로 가서 신주를 정침으로 모신다. 이때 신주를 정침으로 모신다는 고사를 읽어 고한다. 고위는 주인이, 비위는 주부가 모신다. 이러한 과정을 출주(出主)라고 한다.이어 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참신(參神)을 하고, 신이 강림(降臨)하기를 청하는 강신(降神)을 하고, 신을 모셨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올리는 진찬(進饌)을 하여 완전하게 제사를 지낼 준비를 마친다. 신에게 첫 번째 술을 올리는 초헌(初獻)을 하면서 그날 제사를 지내는 사유를 말씀드리는 축문(祝文)을 읽는다. 이어 두 번째 잔인 아헌(亞獻)과 세 번째 잔인 종헌(終獻)을 한다. 종헌에서 좨주(祭酒)를 하여 줄어버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첨작(添酌)과 숟가락을 밥에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는 유식(侑食)을 한다.이제 제사음식을 드실 준비를 했으므로 문을 닫아 음식을 흠향(歆饗)하시도록 하는 합문(閤門)을 한다. 흠향을 다 하면 다시 문을 여는 계문(啓門)을 하고, 조상이 내려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맛보고 술을 마시는 수조(受胙)를 하고 제사를 마쳤다고 고한다. 참사자 모두가 신에게 송별 인사를 하는 사신(辭神)을 하면 다시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는 납주(納主)를 한다. 제사를 마쳤으므로 제사상과 기물을 치우는 철찬(撤饌)을 하고, 모든 참사자와 후손이 조상이 내려 준 복을 받는 음복인 준(餕)을 마지막으로 제사를 마친다.

실체를 알기 어려울 만큼 전승되지 못한 사시제사시제는 제례의 대표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형태였지만, 현재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 또한 사시제의 전승 과정, 단절시기 역시 정확하게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 중기에도 정식 제사가 아닌데도 묘제(墓祭)를 중요시하고 정식 제사인 사시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이미 이때 사시제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시속명절(時俗名節)인 설날ㆍ한식(寒食)ㆍ단오(端午)ㆍ추석(秋夕)ㆍ중구(重九)ㆍ동지(冬至) 등의 명절에도 묘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시제를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 시기 사시제는 점을 쳐서 날을 잡지 못할 경우 춘분, 추분, 하지, 동지에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한 사실을 보면 명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다. 이와 함께 갑오경장으로 인해 모든 문물과 문화가 바뀜으로 인해 사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1934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제정한「의례준칙(儀禮準則)」의 제례 조에서는 기제사(忌祭祀)와 묘제(墓祭)만을 제사의 종류로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이미 이때 사시제 자체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시제는 그 시기로 인해 명절이나 속절에 올리는 차례(茶禮)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현지 조사에 의하면 시제는 시사라고 하여 주로 묘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도 사시제가 명절 차례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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