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제례란

제례공간
사당
안동 양진당 사당 입구
안동 양진당 사당 입구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 사당사당(祠堂)은 조상(祖上)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사전적인 해석에 따르면 가묘는 조상을 함께 제사지내는 곳이고, 사당은 조상이나 선현(先賢)을 제사지내는 곳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당은 넓은 의미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가묘는 이보다 좁은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묘(廟)의 본래 뜻은 선조의 영정을 두고 제사지내는 곳인 영당(影堂)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인(庶人)은 가묘는 세울 수 없지만 초상화(肖像畵)인 영정(影幀)을 모시는 영당은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당은 이 영당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자(朱子)는 “사당이라고 하는 것은 정이천(程伊川) 선생이 제사 지낼 때는 영자(影字)를 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였으므로 영당을 사당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다.”라고 한 이후부터 사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주자가 신과 조상을 제사하는 장소를 아울러 의미하던 사당을 조상제사를 봉행하는 곳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묘로서 사당이라는 용어는 주자가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원래 제례(祭禮)와 관련하여 사당을 논해야 하지만,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음[報本反始]과 조상을 높이고, 종자(宗子)를 공경하는 존조경종(尊祖敬宗)의 뜻에서 진실로 집안의 명분을 지켜 계속적으로 지속하는 근본이 있기 때문에 제일 앞쪽에 위치시켜 참고하도록 하였다고 하듯 사당은 제사뿐만 아니라 유교식 관혼상제(冠婚喪祭)인 가례(家禮)를 실천하기 위한 토대였기 때문에 중요한 항목이었다.

정침의 동쪽에 지어진 사당『주자가례』를 비롯한 예서(禮書)에서는 집을 지을 때는 먼저 정침의 동쪽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있다. 이때 동쪽은 자북(磁北)을 중심으로 한 동쪽이 아니라 집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즉, 집의 위치는 향배(向背)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집의 앞쪽은 남쪽, 뒤는 북쪽, 왼쪽은 동쪽, 오른쪽은 서쪽이 되도록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동쪽은 방위(方位)에 따른 동쪽이 아니라 집의 왼쪽에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사당의 건물 양식은 3칸으로 뒤쪽으로 퇴를 물린 형식이다. 바닥에는 벽돌을 깔거나 마루를 만들고, 자리를 깐다. 밖으로 중문(中門)을 만들고 중문 밖 양편에 3층계로 된 계단을 만든다. 동쪽에 있는 계단을 조계(阼階), 서쪽에 있는 계단을 서계(西階)라고 한다. 계단 아래는 땅의 넓이에 따라 지붕을 덮어 여러 사람이 설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서립옥(序立屋)이라고 한다. 그 동쪽에는 유언으로 남긴 글인 유서(遺書), 의례에 필요한 도구인 의물(儀物), 제기(祭器) 창고와 부엌과 같은 곳인 신주(神廚)를 세운다. 신주는 전사청(典祀廳)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둘레를 담으로 두르고 그 앞에 외문(外門)을 만들고 항상 빗장을 걸어 둔다.만약 집이 좁을 경우 1칸 사당을 지어도 좋다. 이때는 신주와 창고는 짓지 않는다. 유서, 의물 등은 사당 내의 동쪽이나 서쪽 벽 아래에 상자를 세워 두어 동쪽에는 제기, 서쪽에는 유서와 의물을 보관한다.원래 가묘의 경우 천자(天子)는 7묘(廟)로서 소(昭)와 목(穆)이 3이고, 태조가 있다. 제후(諸侯)는 5묘로서 2소와 2목, 그리고 태조의 묘가 있다. 대부(大夫)는 3묘로서 1소와 1목, 그리고 태조의 묘가 있다. 사(士)는 1묘이고 서인은 침에서 지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가례』에서 사당의 제도를 만들고 신분의 구분 없이 4대를 모시도록 하였다.

신주 모시기를 우선시하는 사당의 내부구조사당의 내부구조는 신주를 모시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사당 안에 북쪽 가까운 시렁에 감실(龕室) 4개를 만든다. 각 감실마다 탁자를 하나씩 두고, 주독(主櫝)에 넣은 신주를 탁자 위에 남향하여 모신다. 고조(高祖) 할아버지 부부를 가장 서쪽에 모시고, 그 다음이 증조(曾祖) 할아버지 부부, 그 다음에 할아버지 부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주를 모신다. 모두 남향으로 모신다. 방계(傍系) 친속으로 후사가 없는 사람은 그 소목(昭穆)의 반열(班列)에 따라 옆에 곁들여 모시는데, 이를 부위(祔位)라고 한다. 백숙부조부모는 고조에, 백숙부모는 증조에, 아내와 형제의 아내는 할아버지에, 아들과 조카ㆍ며느리ㆍ조카며느리는 아버지에 곁들여 모시되 모두 서향하여 모신다. 탁자의 동쪽 끝에 모시니 정위(正位)의 동남쪽에 모신다.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하나를 걸러서 할아버지에게 곁들여 모신다.

주독 안에 넣어 남향하여 보관하는 신주신주는 모두 주독(主櫝) 안에 보관하며 남향하게 한다. 감실의 앞쪽에는 작은 발을 드리우고 사당의 당(堂) 가운데에는 향탁(香卓)을 설치하고 향로(香爐)와 향합(香盒)을 올려놓는다. 바깥의 양쪽 계단 사이에도 향탁을 설치한다.사당의 출입은 신주를 모시고 들고 날 때는 중문을 이용하고 계단은 서계를 이용한다. 이는 신도는 서쪽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주자가례』에는 “사당에 오르고 내릴 때는 오직 주인만이 동쪽 계단인 조계(阼階)를 이용한다. 주부와 다른 사람들은 비록 존장이라도 서쪽 계단인 서계(西階)를 이용한다.”고 하였다.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사당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기 때문에 사당에 대한 예절은 평상시 부모를 대하듯 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는 신알례(晨謁禮)를 행한다. 외출을 하거나 돌아왔을 때도 역시 인사를 드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거나 벼슬에 제수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 연유를 사당에 고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절과 시기에 따라 제사를 올려야 하고, 새로운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사당에 먼저 올려야 한다.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에는 참례(參禮), 차례(茶禮), 절사(節祀), 천신(薦新) 등이 있다.만약 홍수가 나거나 화재 등의 사고가 생겼을 때는 가장 먼저 사당을 구하고 신주를 옮기고, 유서를 옮긴다. 그리고 제기를 옮기고 마지막으로 재물을 옮길 정도로 사당이 중요하다. 이는 바로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대가 바뀌면 신주의 분면을 고쳐 쓰고 교체하여 옮기는 것도 철저하게 하여 집안을 계승하여야...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