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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언해(家禮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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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고도서
서명 가례언해(家禮諺解) 저자 신식(申湜)
발행연도 1632년(인조 10) 권수 10권 4책
개요
『가례언해(家禮諺解)』는 조선 광해군 때 신식(申湜)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번역한 책으로 10권 4책의 목판본이다. 1632년(인조 10)에 아들인 신득연(申得淵)이 간행하였다.
해제
『가례언해(家禮諺解)』는 졸재 신식(拙齋 申湜, 1551~1623)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언해(諺解)한 것을 아들 신득연(申得淵)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한 1632년(인조 10) 원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1610년(광해군 2) 3월 5일에 민덕남이 신식의 『가례언해』를 간행⋅배포할 것을 청하여 8일에 예조에 말하라는 전교가 있었으므로 『가례언해』의 저술 시기는 3월 이전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부터 22년 뒤인 1632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신식의 자는 숙정(叔正), 호는 졸재,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신숙주의 5대손으로 퇴계(退溪)의 문인이며, 저서로 『가례언해』, 『의례고증(疑禮攷證)』 등이 있다. 『가례언해』는 16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되는 『주자가례』에 대한 연구가 17세기에 들어서서 민간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자료이다. 즉 『주자가례』에 대한 언해서가 등장한다는 것은 『주자가례』에 대한 수요가 한자를 이해하는 식자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저변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표라는 것이다. 1665년(현종 6) 6월에 쓰여진 송시열(宋時烈)의 「가례언해발(家禮諺解跋)」에 ‘선조⋅광해조에 활동했던 이난수(李鸞壽)의 언해본이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난수의 언해본은 언해의 범위가 ‘초종(初終)’ 절차에 그치고 있고, 이후 『주자가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언해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례언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