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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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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상제례답문(退溪喪祭禮答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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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고도서
서명 퇴계상제례답문(退溪喪祭禮答問) 저자 이황(李滉)
발행연도 1623년(인조 즉위년) 권수 152장(張)
개요
『퇴계상제례답문(退溪喪祭禮答問)』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황(李滉)이 상례와 제례에 대하여 제자들과 문답한 초록을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152장으로 목판본이다.
해제
『퇴계상제례답문(退溪喪祭禮答問)』은 퇴계(退溪)가 문인 또는 오랜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서간 가운데 상제례(喪祭禮)에 관련된 내용만을 제자인 농은 조진(聾隱 趙振, 1535~?)이 초록한 것이다. 본서는 퇴계의 문집의 체재에 따라 인물별 시기별로 관련 편지를 배열하고 있다. 두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편자인 조진이 자기의 의견을 첨부한 부분이 있고, 책의 끝에는 조진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조진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기백(起伯), 호는 농은(聾隱)이다. 퇴계의 고제자(高弟子)로 선생보다 34세 어렸다. 『퇴계상제례답문』은 ‘변례(變禮)의 경우는 일마다 차이가 있어 평상시 연구하지 않으면 일에 닥쳐 절충하기 어렵고, (퇴계) 선생이 문생지구(門生知舊)들과 왕복 강론한 것들은 많은 내용이 문집에 산발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열람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초록(抄錄)하여 열람하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자가례』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변례적 상황을 퇴계의 지침에 따라 처리하기 위한 참고자료용으로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퇴계상제례답문』은 광범위한 인물들이 상제례에 관해 퇴계와 서신을 통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주자가례』의 시행에 적극적이었으며, 상제례의 시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퇴계가 참고한 예서들이 『의례(儀禮)』, 『예기(禮記)』 등 고례(古禮)와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주자가례(朱子家禮)』, 『가례의절(家禮儀節)』, 『고씨상례(高氏喪禮)』 등 송명대의 예서와 『통전(通典)』, 『대명회전(大明會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등 국가전례에 관한 것들이었음을 볼 때, 퇴계 및 당시 학자들의 예학적 수준이 상당한 단계에 이르러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퇴계상제례답문』은 16세기 『주자가례』에 기반한 예교(禮敎)의 확산이 상례와 제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양상을 잘 보여주는 저작이다. 특히 의문변례(疑文變禮)의 측면에서 초기 영남학파의 예학 연구가 이후 17세기 기호학파의 ‘의례문해’류의 저술로 진전되는 과정을 축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저술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