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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란

상례의 변천
유교식 상례방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사기

유교식 상례방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사기

  • 유교식 상례방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사기
  • 고려말 들어와 유교식 상례의 정착화에 기여한 가례
  • 유교식 상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사당(안동 퇴계종택)
  • 유교식 상례 실천에 필요한 신주(안동 퇴계종택)
  • 오늘날 일반화된 장례식장의 삼일장
  •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종가의 장례(안동 퇴계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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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던 유교식 상례의 문화적 전통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상례는 조선시대에 일반화 된 유교식 상례의 문화적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고대사회에서도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고대사회에 이미 예학의 성서라고 할 수 있은 『예기(禮記)』가 들어왔고, 이를 통한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지(三國志)』,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기록에 의하면 이미 삼국시대에는 유교식과 닮은 상복제도, 매장제도, 빈장제도, 삼년상 등의 전통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유교식 상례방식이 도입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기록에서 보이는 유교식 상례 전통또한 고려시대 역시 유교식 상례 도입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이 많다. 그 중에서 985년(고려 성종 4년)에는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삼년복이 정해졌고, 이후에도 여러 번 복제와 상례기간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유교식 상례가 일반화되지는 않았지만, 조정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말이 되면 성리학(性理學)을 도입하면서 주자의 『가례(家禮)』를 들여와 유교식 상례 실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교식 의례와 달리 고대사회부터 중요한 장법으로 존재한 화장한편, 이러한 유교식 의례의 실행과는 달리 고대사회부터 화장 역시 중요한 장법으로 존재했었다. 특히 불교의 영향으로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식 화장이 발달하였다. 즉, 후손이 있을 때는 능묘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화장하여 산골(散骨, 화장 후 뼈를 거두어 갈무리하지 않고, 산천에 뿌리는 장법)하였다는 것이다. 승려는 석탑이나 부도의 지대석 아래에 뼈단지를 안치하였다. 불교식 화장은 불교와 함께 전래되어 삼국시대 후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어졌다. 이러한 화장은 화장을 한 후 산골하거나 뼈단지에 넣어 매장하는 복차장(複次葬)의 형식이었다.

화장과 함께 매장, 풍장 등의 다양한 장법이 나타난 고려시대고려시대가 되면 통일신라의 전통에 따라 화장이 발달하였으나 매장, 풍장 등의 다양한 장법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 매장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그 다음은 화장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화장하여 수습한 유골을 사찰에 일정 기간 동안 권안(權安, 화장한 유골을 바로 갈무리하거나 산골하지 않고 사찰에 일정기간 봉안하는 일)한 후 석곽(石槨)에 넣어 매장하는 방식이었다. 고려시대가 되면 전통적인 영혼불멸사상과 불교식 화장법이 결합되어 있고, 세시에 따라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조상숭배의 전통과도 결합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화장이 사라지고 사당을 세워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조선시대조선시대가 되면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으면서 불교식 상례를 금지함에 따라 화장도 사라지게 된다. 조선초기부터 『가례』에 따라 의례를 행하고, 사당을 세워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초토화된 조선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관혼상제의 의례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보편화 및 일반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하게 된다.

종교의 다양화와 서구 문물의 유입 및 식민지 정책으로 억압당하는 전통 상례그러나 조선말이 되면서 이러한 전통은 종교의 다양화와 서구 문물의 유입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의례준칙」(1934)을 제정하여 전통 상례를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조국 근대화를 위한 허례허식 일소와 의례의 간소화라는 명분 아래 전통상례는 3일장으로 규정된다. 이는 6.25로 인해 대부분 가정에서 신주를 잃어버리게 되고 경제개발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도시화에 따라 더 이상 신주를 모시지 않으면서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통 있는 유명 종가에서는 삼년상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장례식장에서 삼일장으로 상례를 마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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