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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혼례란

혼례도구
소품
납폐서

여자집의 허혼에 대해 폐백을 보내는 예를 행하겠다고 보내는 편지인 납폐서납폐서(納幣書)란 여자집에서 혼인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폐백(幣帛)을 보내는 예를 행하겠다고 보내는 편지이다. 납폐(納幣)를 할 때는 함진아비가 이 납폐서와 예물을 넣은 함을 지고 가기 때문에 이를 혼인이 성사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때 보내는 납폐서를 혼서지(婚書紙)⋅예장지(禮狀紙)⋅혼서(婚書)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납폐서를 혼례를 증명하고, 서약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종이 자체도 일반 종이가 아니라 장지(壯紙)를 서간지(書簡紙) 모양으로 접어서 사용하였다.忝親某郡姓某白某郡某官尊親執事伏承嘉命許以令女貺室僕之子某(非宗子之子則此下當添某親某之四字)玆有先人之禮敬遣使者行納幣禮伏惟尊慈特賜鑑念不宣某年某月某日忝親姓某再拜‘첨친(忝親)’은 ‘상대방을 욕되게 한 친척(親戚)’이란 뜻으로, 사돈(査頓)에 대해 자신을 낮추는 겸칭이다.내용은 다음과 같다.첨친 ㅇㅇ고을 ㅇㅇㅇ는 ㅇㅇ고을 ㅇㅇ벼슬 존친 집사에게 아룁니다.아름다운 명을 내려 주셔서 댁의 귀중한 따님을 저의 아들 ㅇㅇ의 아내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에 선인(先人)의 예절에 따라 사람을 시켜 납폐의 예를 행하옵니다.엎드려 생각건대 높은 사랑으로 굽어 살펴 주시어 다하지 못함을 밝게 여겨 주시옵소서.연월일 아무 고을에 사는 아무개 올림편지를 넣을 봉투는 아래 위를 막지 않고 통으로 만든다. 그리고 겉에는 위쪽⋅중간⋅아래쪽 3군데에 근봉(謹封)이라는 띠지를 붙여 비밀을 보장한다. 봉투 뒤쪽에는 편지를 올린다는 뜻으로 상장(上狀)이라 쓰고, 그 아래에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쓰는데, ㅇㅇ고을 ㅇㅇ벼슬 집사(執事)라고 쓴다.上狀某郡某官尊親執事그러나 관행적으로는 사당에 고하는 고사식과 납폐서를 혼용하고 있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많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時維孟春尊體百福僕之幾子年旣長成未有伉儷伏蒙尊玆許以令愛貺室玆有先人之禮謹行納幣之儀不備伏維尊照謹拜上狀年 月 日         後人       再拜내용은 다음과 같다.때는 바야흐로 초봄(계절에 따라 다르게 쓴다.)이온데 존체백복 하십니까.저의 장남(00)이 이미 성장 하여서 배필이 없더니높이 사랑하심을 입사와 귀여운 따님으로 하여금아내를 삼게 해 주시니 이에 조상의 예에 따라 삼가납폐하는 의식을 행하오니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연월일          후인모 재배실제로 혼서지를 보낸 사례의 유물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536년 7월 성균진사 조치당(曺致唐)이 외손자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을 장가보내기 위하여 신부집에 납채할 때 보낸 것이다. 외조부 조치당이 김부필의 납채혼서를 보내게 된 것은 당시 김부필의 아버지 김연(金緣, 1487-1544)이 흥해군수로 외지에 나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成均進士曺致唐(手決)外孫金富弼 年已長成 未有伉儷謹行納采之儀 伏惟尊鑑謹上狀嘉靖十五年七月日내용을 보면 상당히 간략하게 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성균진사 조치당(수결)외손 김부필이 나이가 찼으나 아직 배필을 찾지 못하여 삼가 납채의 예를 행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삼가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혼서지는 『가례(家禮)』에서는 형식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내용을 참작하여 형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듯 예서(禮書)에서 규정하는 내용과는 달리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이는 그것이 공식적인 문서라기보다는 편지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관행적으로 혼서지는 ‘혼인서약서’, ‘혼인맹서’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혼서지는 혼인생활을 하는 부부에게는 매우 중요한 징표로 여겨 장롱의 맨 아래에 보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 이 혼서지를 반드시 관에 넣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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