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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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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례(朱子家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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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고도서
서명 주자가례(朱子家禮) 저자 주희(朱熹)
발행연도 1759(영조 35) 권수 7권 3책(조선본)
개요
『주자가례(朱子家禮)』는 남송의 주희(朱熹)가 당대 유통되던 생활의칙을 집성한 것으로 사가의 예법을 수록한 책이다. 부친상을 치르면서 가졌던 구상을 모친상을 겪으면서 구체화여 저술하였다. 책은 동아시아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만나 다양하게 활용 또는 변용되었으며 조선에서도 이를 예설의 정통으로 삼아 질적 및 양적으로 다양한 연구를 이루어내었다.
해제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송학의 집대성자인 주희(朱熹)가 남송(南宋) 시대에 유통되던 생활의칙(生活儀則)을 집성한 것으로 권수(卷首)의 가례도(家禮圖)와 7권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례(家禮)’는 방례(邦禮)의 맞짝 개념이다. 방례란 국가의 전례(典禮)를 가리킨다. 즉 방례는 국가 기구에 관한 제도와 법률 그리고 왕의 의전(儀典)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가례는 방례가 아닌 사가(私家)의 예로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통과의례에 관한 의식이다. 『주자가례』는 주자의 나이 40세 때인 1169년(고려 의종 23) 모친상을 입었을 때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자가례』의 편찬은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인 1143년(고려 인종 21)에 ‘여러 가(家)에서 행할 수 있는 예에 관하여 마음을 두고, 가례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저술할 것을 생각했던’ 것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부친상을 치르면서 가졌던 구상이 모친상을 겪으면서 구체화되어 『주자가례』라는 저작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가 고례(古禮)를 체계적으로 집성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라면, 『주자가례』는 당시 사회의 수요에 적응하여 보편적으로 시행 가능한 예제의 수립이라는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다. 동아시아 예치 문화는 삼례서(三禮書)와 『주자가례』가 주된 텍스트로 활용되는 형태이다. 이들 텍스트를 중심으로 크게 시기를 구분해보면, 삼례서가 텍스트화되는 고례의 시기(漢代까지), 삼례서가 제도화되는 시기(漢~宋), 고례서를 바탕으로 사대부 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예제가 사대부의 생활세계의 규범으로 확립되는 시기(魏晉~宋), 예치 문화의 확산과 변용의 시기(明~淸) 등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가례의 차원에서 보면, 위진시대 강성대족(强姓大族)을 중심으로 수립되면서 송대 사대부 계층의 성립과 더불어 가례가 민간 사회에 확산되고 결국 『주자가례』라는 형태로 일반화된다. 이렇게 일반화된 『주자가례』는 동아시아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만나 다양하게 활용 또는 변용된다. 조선의 경우는 14세기에 『주자가례』가 도입된 이후 15세기의 학습기와 16세기 발아기를 거쳐 17세기의 심화・갈등기 그리고 18세기 절정기, 19세기의 숙성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연구가 지속되면서, 판본과 연구의 두 측면 모두에서 미완성인 『주자가례』를 완성시킨다. 즉 중국의 경우는 15세기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 이후 답보 상태에 놓인 『주자가례』에 대한 연구가 조선의 학자들에 의하여 ‘텍스트’와 ‘의미’의 모든 측면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중국을 압도하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는 『주자가례』에 한정할 경우 그 연구는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완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