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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
정침에서 지내는 기제사(안동 지촌종택 기제사)
정침에서 지내는 기제사(안동 지촌종택 기제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기 위해 지내는 보편화된 제사, 기제사기제사(忌祭祀)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사라고 할 때 이 기제사를 가리킬 정도로 보편화된 제사이다. 흔히 사대봉사라고 할 때 이 기제사의 제사를 지내는 범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자신으로부터 4대의 조상인 고조부모까지 기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그래서 이 날을 기일(忌日)이라고 했고 모든 행동을 삼가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기일에는 모든 일을 삼간다고 하는 것은 이 날이 불길해서가 아니라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어서 슬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감히 그 사사로운 정을 다하여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즐겁고 유쾌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기제사의 기(忌)는 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슬픔을 머금고 있어서 감히 다른 일에 미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함께 사용되는 용어인 휘일(諱日) 역시 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때 이 휘(諱) 자를 썼기 때문에 기일을 휘일이라고도 했던 것이다.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 기제사기제사를 지내는 시기는 어버이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래서 점을 치거나 시기를 정해놓지 않는다. 이 때 만약 윤달에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윤달이었던 원래의 달 기일에 지낸다고 한다. 만약 다시 윤년이 들어 윤달이 되었을 경우에도 윤달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달에 지낸다. 다만 윤달의 기일에는 삼가기는 하지만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또한 그 달의 마지막 날에 돌아가셨을 경우 음력에는 큰달과 작은 달이 있어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큰달이 되어 30일이 되면 30일에 지내고, 작은 달이 되어 29일이 되면 29일에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집안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단설과 합설제사를 모시는 대상은 돌아가신 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분만을 모실 것인가 부부를 함께 모실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는 “단지 하나의 신위만 설치한다. 한 분의 신위만 설치하는 것이 올바를 예이다. 대개 기일은 초상의 나머지다. 그 어버이가 돌아가신 날을 만나 어버이를 생각하며 그 신위에 제사지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신위를 모시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제사를 받아야 할 신위에게만 제사지내고 배위의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그것은 배위의 제사를 박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슬픔이 제사를 지내야 할 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만 한 분의 신위에게만 제사지내는 것이 옳다. 고와 비를 아울러 제사지낸다는 것은 비록 선유의 말씀이 있더라도 쫓을 수 없을 듯하다.” 하였다. 따라서 원칙은 돌아가신 분만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른 예라고 하였다. 이처럼 돌아가신 분만 모시고 지내는 것을 단설(單設)이라고 한다.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부부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역시 예설(禮說)은 단설이 맞지만 집안에서는 합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단설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하였다. 학봉 김성일(鶴峯 金成一) 역시 그의 저서 『봉선제규(奉先諸規)』에서 단설이 올바른 예이고, 합설을 하는 것은 인정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하여 양쪽 입장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에도 집안의 전통에 따라 합설 혹은 단설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날의 첫 시각인 자시에 정침에서 지내는 제사, 기제사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정침이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궐명(厥明)에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돌아가신 날의 첫 시각인 자시(子時)에 지낸다. 즉,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시각이다.제사의 절차나 제수(祭需)는 사시제와 같으나 수조(受胙)와 음복(飮福)의 절차가 없다. 그러나 현재 기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대부분이 음복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유교식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유명 종가의 경우에도 기제사에서 음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아마도 유교식 의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국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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