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제례란

제례공간
묘소
묘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묘소
묘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묘소

조상의 육신인 체백이 묻힌 무덤, 묘소묘소(墓所)는 조상의 육신인 체백(體魄)이 묻힌 무덤이다. 묘소는 묘제(墓祭)를 지내는 장소로서 산소(山所)라고도 한다. 더러 ‘말무덤’이니 ‘개무덤’이니 하는 동물 무덤이 있지만, 이런 것은 특별한 경우일 뿐 무덤이란 역시 사람의 매장시설이다. 한 집안을 구성하는 문중의 시조묘(始祖墓)의 경우에는 묘를 관리하는 재실(齋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시신 처리의 결과물과 망자의 기념비적 형상물이라는 관점으로 본 무덤무덤이란 ‘묻다[埋]’라는 동사의 어간 ‘묻’에 명사화 접미어 ‘엄’이 맞춤법의 규정에 따라 ‘무덤’으로 표기된 것이다. 이는 ‘죽[死]+엄’이 ‘주검’으로 표기되는 것과 같다. 무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 기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개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 번째 학설은 무덤이 시신을 처리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이고 두 번째 학설은 무덤이 사람의 기념비적 형상물이라는 관점이다. 전자의 견해에 따르면 무덤은 부패하기 쉬운 시신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겼다는 것인데 시신을 처리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땅을 파고 묻은 매장(埋葬)의 결과로 생겼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후자의 견해는 공동생활의 일원이 죽으면 슬픈 감정이 우러나고 그리운 정이 생기므로 고인 대신에 그를 추모할 어떤 기념비적 형상으로서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견해 사이에는 정답보다는 시간적 선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상의 체백이 묻힌 곳으로 영혼을 모시는 사당과 함께 중요한 공간, 묘소우리나라에서는 묘소를 조상의 체백이 묻혀 있는 공간으로서 영혼을 모시는 사당과 함께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조선 중기에도 이미 정식 제사가 아닌 묘제(墓祭)를 중요시하고 정식 제사인 사시제(四時祭)를 지내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는데 때문에 사시제와 달리 묘제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물론 집에서 묘제를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추석 등에 성묘(省墓)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다만, 회전제사(會奠祭祀)라고 하여 문중(門中)의 성원이 함께 모여 선조의 제사를 지내는 문중의 묘제는 존속되고 있다. 한 때 영남지역에서는 “도포 싸서 회전제사 나가면 보름 만에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묘제를 중요시 했다.

신분의 구별 없이 구성이 대략적으로 동일한 무덤의 구조무덤은 신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구성은 대략적으로 동일하다. 대부분의 분묘는 풍수(風水)의 영향으로 산기슭에 위치한다. 멀리 조산(祖山)으로부터 용이 묏자리로 들어오는 입수(入首), 봉분을 둘러싸는 사성, 봉분(封墳)과 명당(明堂)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묘비(墓碑)ㆍ상석(床石)ㆍ장명등(長明燈)ㆍ계체석(階砌石)ㆍ망주석(望柱石)ㆍ문인석(文人石) 등이 선다. 왕릉(王陵)은 분묘의 뒤쪽을 둘러싸는 곡장(曲墻)ㆍ양석(羊石)을 비롯한 동물석ㆍ무인석(武人石)ㆍ문인석ㆍ망주석 등을 세우지만 일반인들의 묘에는 무인석은 세울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